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음을 말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두 인물 아브라함(1-3)과 다윗(4-8)에 대해서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그는 모세의 율법이 있기 전에 있던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 준수가 칭의의 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의롭다 여김 받았을까요.
그 또한 하나님 앞에서 행위로써 인정받을 순 없었습니다.(2)
성경은 그가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졌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의롭다 여겨졌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1.하나님을 믿음이 어떻게 구원의 믿음이 되는가?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했음에도 그의 믿음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믿음의 대상과 내용, 그리고 본질이 신약의 성도들이 가진 믿음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점진적 계시'라는 성경의 핵심 원리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아브라함은 그림자(약속)의 형태로 주어진 복음을 믿었고, 우리는 실체(성취)로 오신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대상은 같으나 계시의 선명도에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1) 믿음의 대상이 동일합니다.(삼위일체 하나님)
2) 믿음의 내용이 동일합니다. ‘오실 메시야에 대한 약속’
아브라함이 받은 약속의 핵심에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 땅의 모든 족속을 향한 축복 (창 12:3):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약속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미리 전한 복음이라고 해석합니다.
-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갈 3:8)
- 그의 '씨'를 통한 성취: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의 '씨'(자손, a seed)가 단지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단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3:16)
3) 아브라함이 본 '그리스도의 날'
아브라함의 믿음이 단지 막연한 기대가 아니었음은 예수님의 증언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 이삭을 바친 사건 (창 22장):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대신할 숫양(대속물)을 예비하신 이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대속물로 주실 미래의 그 날을 영적으로 미리 맛보았습니다.
- 예수님의 직접적인 증언: 예수님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 8:5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분명히 장차 오실 메시아, 즉 예수님 자신을 향하고 있었음을 확증하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구원에 이르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믿음은
① 동일한 하나님을 향했고,
②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동일한 약속을 내용으로 삼았으며,
③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한다는 동일한 본질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오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약의 성도들은 '오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구원의 길은 언제나 단 하나, 오직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2.의로 여겨진 바 되었다.(3)
이 단어는 본문의 핵심 동사로, 회계 장부에 특정 항목을 기입하거나 계산하는 것을 의미하는 상업 용어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계좌에 '의(righteousness)'를 입금해주시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 자체를 의로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를 그의 계좌에 입금해주셨습니다. 즉, 우리에게 실제로 없는 의를, 그리스도의 의를 보시고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간주해주시는 법적인 선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의를 있는 것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바울은 '일과 삯'의 원리를 설명하며 논증을 심화시킵니다. '일하는 자'가 받는 '보수'는 당연한 대가이지 선물이 아니지만(4절),
복음의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심지어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신다'는 것입니다(5절).
이 논리에 대해서 설명하며, 바울은 율법 아래 살았던 다윗 왕을 언급합니다.
다윗은 시편 32편 1-2절에서 진정한 복은 죄를 짓지 않는 무흠함이 아니라,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지며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시는 것"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즉, 다윗이 경험한 '의' 역시 행위의 결과가 아닌, 죄를 용서받고 죄를 없는 것으로 '여김 받는' 은혜의 결과였습니다.
다윗은 율법 아래에서 살았지만, 율법을 완벽히 지켜서가 아니라 오히려 끔찍한 죄(밧세바와의 간음, 우리아 살인)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죄 용서'를 통해 의롭다 하심의 복을 누렸습니다. 이는 율법이 인간의 죄를 드러낼 뿐, 구원의 방편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7-8절까지는 마치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팔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편 32편의 다윗의 시를 인용합니다.
1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2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다윗이 말한 '복이 있도다'(Blessed is...)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이 있나니'(Blessed are...)는 헬라어 성경에서 동일한 단어인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를 사용합니다.
이 '마카리오스'는 세상이 말하는 일시적인 행복(happiness)과는 다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안으로 들어와 그분의 인정을 받으며 누리게 되는, 근원적이고 흔들리지 않는 복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즉, 두 본문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복된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본문이 선포하는 '복'은 세상의 가치 체계를 완전히 뒤집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 산상수훈의 복: 세상은 '마음이 부유한 자', '웃는 자', '자신감 넘치는 자'가 복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가 복되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원리와 정반대로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 로마서 4장의 복: 세상과 종교는 '열심히 일한 자', '공로를 쌓은 자', '흠 없이 깨끗한 자'가 복(보상)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다윗을 통해 바울이 증언하는 복은 정반대입니다. '일한 것이 없는 자', 심지어 '불법과 죄가 있는 자'가 그 죄를 용서받고 없는 것으로 여김 받을 때 참된 복을 누린다고 선언합니다.
이처럼 두 본문 모두 인간의 성취나 소유에 근거한 세상의 복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의 질서 안에서만 발견되는 역설적인 복을 말하고 있습니다.
산상수훈의 팔복이 '은혜를 받는 자의 내면적 상태와 자세'를 묘사한다면, 로마서 4장의 복은 '그에게 베풀어지는 은혜의 객관적인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 이는 자신의 영적 파산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고백하는 상태입니다.
- 이 사람은 바로 로마서 4장 5절의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의 내면적 초상화입니다. 자신의 공로가 '0'임을 알기에 오직 은혜만을 구할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 이는 자신의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며 통해하는 마음입니다.
- 이 사람은 바로 로마서 4장 7절의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신의 죄를 애통해하는 자만이 죄 사함의 위로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 이는 스스로에게는 의가 없음을 절감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간절히 갈망하는 상태입니다.
- 이 사람은 바로 로마서 4장 6절의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복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자신의 의에 대한 갈증이,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 파산의 인정이야말로, 다윗이 노래한 '값없는 용서와 칭의'라는 은혜의 복을 받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팔복이 은혜를 받을 그릇의 '상태'(가난, 애통, 목마름)를 보여준다면, 로마서는 그 그릇에 담기는 은혜의 '내용'(죄 사함, 칭의)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팔복에 묘사된 사람이야말로 로마서 4장의 복음을 듣고 "아멘"으로 화답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두 본문을 함께 묵상할 때, 우리는 구원 얻는 믿음이 어떤 마음에서 시작되고, 그 믿음에 하나님께서 어떤 복을 부어주시는지를 입체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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